시편 45편은 시편의 다른 시와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왕의 혼인을 준비하는 시이며 동시에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메시아 시입니다. 본문의 왕에 대해 어떤 주석가들은 솔로몬 왕과 애굽 공주의 결혼일 것이라고 하고,또 다른 이들은 솔로몬과 드로의 공주, 파사 왕과 그의 신부인 요달과 아달리아, 또는 아합과 이세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유대인의 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상적 왕인 것을 말씀합니다.
고대에서는 약혼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약혼을하면 육체적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남편과 아내로 부르고,파혼 시에는 이혼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결혼식 날 여자는 가장 좋은 옷과 장신구로 단장하고 신랑을 기다리고, 신랑은 자기 집에서 하객들과 모여 있다가 신부를 데리고 오기 위해 신부 집으로 행진해 나갑니다. 이때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면서 결혼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신랑 집에서는 결혼 잔치가 열리는데 한 주, 또는두 주 동안 신랑의 가문과 신분과 부의 정도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집니다.
본문 2-9절은 신부를 기다리는 왕, 10-12절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에게 주는 충고, 13-15절은 신부가 왕에게 이끌려 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시인의 결혼과 부부의 연합에 대한 개인적 축복의 내용입니다.
1. 왕께 드리는 찬하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 같도다”(1절).
시인은 능숙한 필객처럼 왕의 결혼을 입으로 표현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왕은 지상의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왕 중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의 신부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왕께 드리는 찬하의 단순한 말이 아니라 왕 중 왕께 드리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1절을 ‘내 가슴이 영감 된 말로 흘러넘친다’라고 번역합니다. 신랑 된예수님을 마음껏 찬양한다는 의미로 왕의 아름다움, 왕의 능력, 왕의 덕, 왕의 위엄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2절)는 왕의 내면적 미를 말합니다. 메시아의 외모는 보잘 것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한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아름다워서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운 품성을 가지셨습니다(4절).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던 이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이들이 자신을 떠나매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제자들은“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우주만물을 섭리하십니다. 왕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신랑이 되십니다.
3절은 왕의 능력과 영화를 노래합니다. 왕이 칼을 허리에 차고 열방을 위협하는 모습은 영화와 위엄에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칼은 말씀의 검입니다.
결혼하는 왕의 의복들은 아라비아산의 몰약, 인도산의 침향과 육계 등 고귀한 향료이며 왕궁은 상아로 장식되고 연회는현악으로 즐겁게 합니다. 상아궁은 솔로몬의 궁으로 사치하고 화려함의 대명사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인격과 메시아 왕국의 즐거운 모습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6절).
이 말씀은 메시아적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6절에서는 결혼식의 신랑을 하나님으로 부르고, 7절에서는 다시사람으로 부릅니다. 이것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하는것입니다.
2. 신부에게 보내는 충고
만일 신부가 잘못한다면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인은 왕후에게 자기 나라와 친정집을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것(10절), 남편인 왕만 주로 섬기라는 것(11절), 그리고 왕의 기쁨과 즐거움을 자기 것으로 삼을 것(12절)을 충고합니다.
성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에게 모든것을 바쳐야 됩니다. 예수님은“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인간관계가 하나님 관계보다 우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지금까지 세상에 충성하던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11절의 경배하라는 말은 허리를 굽혀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과 신부의 장엄한 사랑관계에서 생기는 것으로 신랑에 대한 존경심이 경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이것은 교회의 주 되시는 예수님을 향한 교회의 자세와 같습니다.
시인은 왕의 사랑, 왕과의 관계를 통해 신부에게 주어질 영광, 왕과 함께 누릴 기쁨과 즐거움을 신부의 미래로 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신부에게 미래를 내다보라고 합니다.
3. 내가 곧 오리라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16절).
왕의 자손이 왕위에 계속 오를 것이며 그 왕위가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는 교회도 그와 더불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영적 배우자로 삼으시기 위하여 처음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 째 오실 때는 영원히 우리를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오시는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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