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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4
역경에 처한 백성

본문에는 하나님을 깨우기 위한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나옵니다(23절).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부르면서 구원을 요청합니다(막 4:35-41).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처럼 주무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십니다.

이 시는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기록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의 정확한 배경이나 상황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군사적 실패를 경험했을 때일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시편을 애가, 찬송 시, 감사 시, 확신의 시, 기억의 시, 지혜의 시, 왕의 시, 메시아 시 등으로 분류하는 가운데 본문은 애가에 속합니다. 시편 44편은 과거(1-8절), 현재(9-22절), 미래(23-25절)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과거 구원행위와 고통에 대한 현재의 관심, 그리고 오는 세상에 대한 도움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과거 구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1절).

이 시의 서두는 하나님의 과거 구원을 기억하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귀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사실을 들어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칼이나 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빛으로 하셨습니다(3절).

우리 국가를 생각해보면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8.15 광복, 1970년대의 교회 성장 운동도 역시 어떤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나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6절). 여기서 주어는 복수 1인칭(우리)이 아닌 단수 1인칭(내가, 나의)입니다. 하나님의 과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간증합니다.

그러나 9절 이하에서는 슬픈 노래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금은 도우시지 않는다는것입니다.


2. 혼란에 빠진 현재
성경에는 그 때와 지금의 대조가 자주 나옵니다. 시편 44편은 슬픈 과거와 영광스러운 현재가 아니고 영광스러운 과거와 비극적인 현재가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거에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하나님에게 기대하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과는 대조적으로 오늘의 수모는 처참하기만 합니다. 시인은 여기서 폭발할 것같은 심정으로 오늘 당면한 참상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9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과거 하나님의 보호와 오늘의 방치에서 풀기 어려운 모순을 발견하고 비탄에 빠집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시고 보호하시던 하나님이 지금은 미운 물건처럼 버리고(9절), 쓸모없는 물건처럼 헐값에 팔아넘기며(12절), 잡아 먹힐 양같이 열방에 흩어버리고(11절), 전쟁에서 쫓기고 약탈당하며 이웃으로부터는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열방으로부터는 능욕을 당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13-16절). 어제와 오늘이 엄청나게 다른 하나님의 행사에서 시인은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시인은 또 다른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당시의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과 완전히 반대현상을 이루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17절).

행함과 보상의 부조화에서 시인은 더욱 고뇌에 빠집니다.시련 중에서도 이스라엘은 주를 잊거나 주와 맺은 언약을 어긴 적이 없고(17절), 변심하여 주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았으며(18절),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 적이 없는데도 하나님은사망의 땅에 이스라엘을 팽개쳐 버리신 것에 갈등합니다. 우리는 쉽게 권선징악의 단순 논리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세상은 오히려 모순 논리에 의해 거꾸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계속 어렵게 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을 조장하는 사람은 오히려 성공자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바울과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에 직면했고, 오랫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입니다.


3. 미래 구원을 위한 기도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26절).

역경이나 환난 중에 처한 성도가 해야 할 과제는 원망이나 절망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진실하심을 입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인은‘이스라엘을 버리지 마소서’(23절), ‘ 잊지 마소서’(24절) ,‘도우소서’(26절)라고 간구하며 ‘깨소서’(23절), ‘ 일어나소서’(23절)라고 촉구하지만 이 기도의 목적은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의 주님이심을 만민이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진정 위대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주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늘 우리를 알고 계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22절에“주를 위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면 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 분은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보증이 되십니다.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26절)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구원해주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해 주소서’라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는 개인의 경험을 서술한 시가 아니고 국가적 사건을 다룬 국민의 시입니다. 주를 위하여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진정한 기도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