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보다 바라바를 택했다
Barabbas preferred to Jesus
요18:35-40
1.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 후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예수를 방면하려고 여러 가지 길을 모색했다.
그때 빌라도는 유대인의 관례를 생각했다.
유월절에 죄수 한 사람을 석방하는 일이다.
강도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놓아주랴 했을 때 군중들은 예수보다 바라바를 택했다.
2. 바라바는 살인자, 흉악범, 민족 배신자로 Bar(son) + Abba(father) = son of father 그 아비의 아들, 사탄의 자식이다.
이는 우리를 가리킨다.
우리가 바라바 였다 :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강도다.
천국 시민으로 천국의 계율을 파기한 죄인
형제를 미워하고 시기한 살인자
죄의 사슬에 묶여 고통 중에 자유를 얻으려고 몸부림침
그러나 자력 구원이 없다.
죽을 자리에 있던 바라바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에게도 구원은 없다.
I. 누가 예수보다 바라바를 택했나?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믿는 우리는 모든 사건, 역사 속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예수의 생애, 죽으심이 예언 성취였다.
그렇다면 예수보다 바라바를 백성들이 선택케 하신분도 하나님이시다.
바라바는 죽을 시간을 기다리던 사형수다.
아무리 무서운 포로라도 총, 칼, 법, 권력으로 제어할 수도 제거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기없이 세상을 변혁 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이 대항 할 수 없는 분임을 알고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살려달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
예수의 죽으심으로 바라바와 같은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II. 주님께 대적한 큰 죄의 값은 받아야 한다.
예수보다 바라바를 택한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뜻을 이루었지만, 그 동기는 하나님께 대적자가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범죄자로 낙인되었다.
우리는 일의 결과를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동기와 과정을 기억하신다.
(과격 데모가 폭도수준이 되었을 때 경찰 진압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 여론은 결과만 보고 경찰만 책망한다-슬픈 일이다)
동기가 불순하면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가롯 유다가 십자가 공로자인가?)
`내가 누구의 소를 취했더냐, 나귀를 빼앗더냐, 내가 누구를 속였더냐 억울하게 했더냐, 내가 누구의 뇌물을 받았더냐`(삼상12:3)
주님께는 흠도 점도 없는 죄가 없는 분이다.
1. 백성들에게 먹을 것, 치유, 귀신축출하여 살려 주셨으나 백성들은 죽이라 소리쳤다
2. 가르치심에 부도덕한 것 없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강조하고 온유, 겸손하셨다.
로마인에 칼을 뽑거나 백성 충동하여 독립 운동 촉진 시키지도 않았다.
이웃보다 자기 유익 구하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보다 바라바를 달라고 백성들은 외쳤다.
3. 재물을 탐하지 않고(깃들 곳, 머리 둘 곳 없었다) 제자들에 의해 절대 굶주림을 도움 받았다
희생의 본을 보이신 도성인신(道成人身)하신 분으로 살았다.
4. 죄없는 예수를 불합리한 적대감과 무분별한 잔인함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쳤다
완전한 선에 대한 인간의 원한, 선이나 진리가 오면 자기 죄가 폭로 되거나 도전 받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미워했다.
5. 이 사람(이놈, 악마)이 아니라 바라바를 택했다(40)
III. 이것은 이세상 모든 시대의 죄를 보여준 것이다
1. 당시 로마제국의 박해아래 있던 대부분의 백성들은 크리스챤이 아니고 남색하는 소돔사람들(Sodomites, 동성연애자들)로 그들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살인자, 강도를 살리라고 외친다
사형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인도주의 표방 하지만 실은 바라바를 택한 이들이다.
2.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자 세상은 약삭빠르게 변하여 명목상 신자(Nominal Christian)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이 교회의 머리 위에 앉아 주님의 영광을 찬탈한 중세교회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John Calvin은 그리스도의 대리인(vicar of Christ)이라 불리는 로마의 교황을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3. 바라바를 택한 세상사람은 사람만 좋아하면, 하나님이야 기뻐하시든 슬퍼하시든 상관없이 예배의식도 신앙생활도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영과 진리를 떠나 눈에 보이기 좋고 귀에 듣기 좋은대로 하자는 것이다.
예배시간에 앉아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어떤 마음으로 헌금했든지 선한 목적에 쓰여질 것으로 감사하고, 외형적 직분과 우쭐거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충성했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이것이 바라바를 택한 우리의 모습이다.
4. 같은 민족끼리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자유민주주의도 포기하고 공산주의도 상관없다는 이들이 있다
선교사 1등 파송국,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를 적대시하고 백성을 굶겨 죽이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는 동족이라는 이유로 그를 택했다면 예수보다 바라바를 택한 이들이다.
5. 세상은 지금도 그리스도보다 바라바를 더 좋아한다
세상은 신앙인과 세상 사람을 재는 잣대가 같지 않다.
세상은 당신을 죽이려 한다.
그리스도아닌 바라바를 택한다.
6. 그리스도보다 바라바를 택한 죄는 우리가 회심전 우리에게 있었던 죄다
내가 그리스도를 더 좋아했는지 세상을 더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라
누구와 대화하기를 좋아했나, 무슨 얘기를 즐겨 했던가
무슨 책을 주로 읽었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얼마나 생각했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과거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죄에서 돌이키는 것은 흐르는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과 같다.
하나님 은혜가 강권적으로 임해야 오늘 내가 그리스도를 택했노라 할 수 있다.
맺는말
1. 바라바를 택한 숨겨진 죄를 회개하라
2. 잘못된 가치관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바꿔야한다
3. 그리스도냐 세상이냐 당신은 어느편에 서 있나(장로대통령이 절간에 가서 합장)
4.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겁기 때문에 택할 수 없다는 이가 있다
훈련 없는 군인 전쟁 못한다.
5. 일시적인 것 때문에 그리스도보다 바라바를 택한다
영원을 사모하라
6. 바라바의 사건은 4복음서에 기록된 중요 사건이다
예언대로 오셨다가 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백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뜻이다.
7. 죽음을 기다리던 바라바는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다
그는 거부할 수도 지연시킬 수도 없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 그를 위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