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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례자 293> 빈약한 자의 강한 애소(哀訴) 조회수 764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다.”(시41:1) 즉 가난과 복을 연결시키고 있다. 물질적 가난을 말씀한 것인가?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라고 하심으로 여기서 가난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고, 신체적으로 병약한 자, 마음이 빈약한 자, 사회적 위치가 미약한 자, 하나님의 징계 아래 고난을 당하는 자를 가리키신 것이다. 이런 자는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빈약한 자들을 외면하고 경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빈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비를 베푸는 자들을 지켜보시고 저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해 주시겠다 하신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다고 성경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다. 시편 41편에 의하면 재앙의 날에 그를 지켜 주신다 했다. 그의 생명이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잘되게 하시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 그리고 병들어 눕게 되더라도 고쳐 주시고 일어나게 하신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교만하여 마음이 부한 자가 아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영적 파산자(Spiritually bankrupt)로 하나님의 의와 거룩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은 죄와 부패로 더러워진 존재임을 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인식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인간 노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로만 칭의를 얻을 수 있다는 교리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다. 이와 같은 가난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자력으로는 산상보훈의 말씀을 이룰 수 없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움직여 주셔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시내산 위에서 받는 동안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 섬기며 노래했다. 이처럼 십계명 즉 하나님의 의의 표준은 죄인된 인간에 의해 성취될 수 없음이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이미 밝히 나타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고 회개 자복하는 이에게는 희생제물을 바칠 때 죄를 용서하시거니와 자기 의를 자랑하고 율법을 불순종하는 이에게는 율법의 높은 기준으로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의 종교 행위를 위선이라 책망하시면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다윗은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시 41:10)라는 즉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 사상과는 배치되는 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왕으로서 다윗은 원수를 멸할 힘을 달라는 통치자의 책임을 하는 기도를 한다. 병중에서도 모독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본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면 오히려 율법은 인간을 심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은 말씀 수준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 이들만이 율법을 성취시킬 수가 있다. 중생치 못한 이들 즉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 속에 없는 이들에게 산상보훈을 말씀하는 것은 이리와 양이 한 구유에서 먹는다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거듭난 새로운 성품이 먼저 요구될 때 실현될 수가 있다. 우리 삶 속에 채우기 전 먼저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전 영적으로 먼저 가난해져야 한다. 새 술을 붓기 전에 옛 술을 부대로부터 버려야 한다. 패한 후 흥하게 되고(눅 2:34) 채우려면 먼저 비우라는 것이다. 회심 전 회개를, 구원 받기 전 하나님 면전에서 무가치한 존재임을 고백해야 한다. 빈그릇을 준비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당신을 채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의 수준에 이르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빈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불가능한 일이다.

거룩하시고 의롭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만나야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을 바라보면서 또는 다른 사람 안에서 심령의 가난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인간의 심령은 만물보다 부패했기 때문이다. 타인과 비교해서 나는 좀 낫다 하는 이가 있으나 그리스도보다 더 완전한 이는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자비와 구원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비로소 겸손해지고 필요를 깨닫게 되고, 그 결과가 복될 것이다. 우리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한 이사야처럼 고백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임하셨음으로 당신 자신에 관해 잊어버리고, 자신을 작고 더러운 존재로 보고 자신의 관심에 관해 잊는 것이 더 좋다. 그때 산상보훈을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보게 될 것이고 그에게 점점 더 가까이 가도록 애소(哀訴)케 될 것이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 기사 출처한국장로신문 (해당 기사는 각 언론사와 저작권 협의를 거쳐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