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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례자 270> 크리스천의 자유 조회수 715

미국 32대(3선) 루즈벨트 대통령(Franklin Delano Roosevelt)은 1941년 1월 6일에 인권에 대한 4가지 자유에 대한 명연설을 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기폭제로 삼아 한반도에서 자결, 자주, 자유, 평화의 깃발을 내걸고 1919년 3월 1일에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자유의 개념이 흔히 말하는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무지로부터의 자유와는 달리 성경이 가르치는 크리스천의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한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만이 그의 말씀(진리)를 통해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은혜로 주어진 이 자유는 “예수 안에서만”보장되며 “예수를 통해서만”행사되어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율법, 죽음, 죄로부터의 자유다.

어떤 이가 자기 목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을 성공적으로 끊었다면, 우리는 그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해방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해방시키신 분으로서, 세상의 누구보다도 뛰어나시고 찬양을 받아야 할 위대한 해방자시다. 노예로 산다는 것 즉 생각, 행동, 말과 먹고 자는 모든 것을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그의 삶은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 폭군의 의지에 내 존재가 맡겨져 있다면 죽은 인생이라 할 것이다. 독재자가 씌워준 개 목걸이를 차고, 그 발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뼈다귀를 기다리는 비굴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전장에서 썩은 고깃덩이 먹기를 좋아하는 독수리처럼 살기보다, 이름값을 하며 살겠다며 몸부림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 자유를 빼앗긴 노예의 멍애는 용감하기엔 너무 무거워서 견디지 못하고 초조해 지고 그 압박에 쓰려지고 만다. 폭군의 압박엔 사랑이나 자비의 그림자는 없다. 심한 멸시와 고통이 계속 가중될 뿐이다. 이때에 독재자를 쓰러뜨릴 분이 나타나서 그를 결박하고 우리를 해방시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새생명을 주신 분이시다. 자유를 빼앗긴 노예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해방이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압박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폭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 우리의 혈맹 미국과 우방국가들 그리고 피 흘려 싸운 애국투사들께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섬기고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신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우리 국민은 돌려야 한다.

영적 자유가 절실하다.

정치적 자유도 필요하지만 성경은 죄와 사탄의 사슬에서 종살이하는 이에게 영적 자유가 절실하다고 가르친다. 교권 앞에서 비겁해 지는 이, 샤머니즘적 물질적 번영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이, 거짓 교훈과 권위에 자기를 빼앗긴 이, 악마와 욕심에 지배를 받는 이, 자기 이데올로기와 격정을 섬기는 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종살이하는 이들이, 비록 그 삶이 도덕적이고, 행실은 존경받고, 명성은 높아졌다 해도 자유함을 얻지 못함을 인식해야 한다. 당신의 옛 죄가 계속 괴롭히고, 이전의 타락상이 난처하게 하고, 용서를 받지 못한 채 평화를 찾지 못한다면, 당신의 죄를 수년 동안 땅 밑에 묻어 두었으나, 양심은 그 죄를 부활시키고, 그 죄의 유령이 당신을 계속 괴롭힐 것이므로 닥쳐 올 하나님의 진노의 환상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된다. 이런 죄책감에 시달리는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완전 자유가 아직은 없다 할 것이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

죽음의 공포란 죽음 너머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값은 사망이라.” 그러나 죄가 용서 받았을 때 사망은 더 이상 쏠 곳을 잃어버린다.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생명의 구원을 받는다.”

거짓 자유도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아직도 남한 백성을 해방시키겠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쾌락과 정욕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자유는 부여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것이다. 빌라도 법정에서 자신의 자유를 양보하고 무덤에 잠드신 주님을 보라. 그리스도는 자신이 노예됨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당신이 자유인이라면 과거대로 살지 않고, 나를 얽매이고 있는 죄를 미워하고, 다른 사람을 풀어 줄 것을 위대하신 해방자 그리스도께 간청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

죄로 하나님을 알지도 섬길 수도 없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었고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인권은 신권(神權)이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주인되어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완전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빚진 자로 이웃의 종이 되는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령의 은혜로야 바르게 활용된다.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봉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유는 삶의 수단이지 목적은 될 수 없다. 한번 잃은 자유는 회복키 어려우니 받은 자유를 굳건하게 지켜 나가자.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 기사 출처한국장로신문 (해당 기사는 각 언론사와 저작권 협의를 거쳐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